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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야기(3) 메간 폭스로 대동단결 by Charlie


D라인과 S라인
6월 11일 토요일자 출판면의 톱기사입니다. 이번에 다룬 신간은 [팻 Fat -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2011, 소동)입니다. 지방, 기름, 살찐, 비옥한… 다양한 의미를 지닌 단어 Fat을 주제로, 13명의 인류학자가 저마다 풀어놓은 문화인류학적 고찰들을 모은 책이에요. 살이 튼 자국을 선망하는 니제르의 여인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속에 담긴 성적인 은유, 인간의 기름을 내다파는 살인마 괴담, 엄청나게 살찐 힙합 가수들의 초(超)남성성, 뚱보 포르노가 보여주는 함의들… 비만을 넘어 기름, 지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글들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지면 계획을 받고 처음에 든 생각은 '그냥 쉽게 갈까?' 였어요. 볼이 미어지도록 햄버거를 먹고 있는 사람이라든가 누군가의 늘어진 뱃살 같은 이미지를 쓰면 빨리 그리고 간단하게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럼 너무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책의 첫 번째 꼭지이면서, 독자들의 접근이 가장 쉬울 것 같은 주제인 '뚱뚱한 몸의 아름다움'에서 아이디어를 내보자 - 고 결정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 주1)였습니다. 다산을 기원하는 부적으로도 알려진 이 육덕진 풍만한 여인상에 붙여진 '美의 여신' 비너스의 이름은, (추측이긴 하지만) 당대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형상화한 상징물이라는 학계의 주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양한 해석 중 하나이긴 하나) 풍만한 육체를 찬미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제가 처음에 선택했던 주제를 전달하기에 꽤나 적절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이미지 하나만으로는, 한 사회의 문화를 그 문화가 속한 환경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자는 '문화 상대주의'적인 접근에 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금 한 말은 좀 잘나 보일까 싶어서 한 말이고요(...), 실은 이미지도 주제도 심심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을 고쳐먹게 됐습니다. 고민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시련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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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1908년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근교의 팔레오세 지층에서 고고학자 Josef Szombathy에 의해 발견된 11.1 cm 키의 여자 조각상. 22000년에서 24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빈 자연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야한 사진을 모으는 게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을 붙들고 아이디어를 내놓으라며 패악질(...)을 시작했습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피자 조각, 벨트를 탈출하고픈 뱃살, 뚱뚱한 남자와 날씬한 모델.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정리하던 중 서로 상반되는 이미지를 이용해 레이아웃을 만들어보자고 마음 먹게 됐습니다. ') 모양'의 똥배와 ') 모양'의 잘록한 허리를 박스의 좌우에 위치시키고 그 사이에 기사를 흘리면 어떨까?! 라는 거죠. 고민 끝! 이제 적절한 이미지 찾기에 착수합니다.

앞뒤 맥락 없이 보면, 회사 컴퓨터로 버젓이 야한 사진 검색에 여념이 없는 한 명의 훌륭한 변태로밖에 보이지 않는 풍경이죠(...). slim, slender, belly, body 따위의 검색어로 견제의 잽 좀 날려주다가 megan → fox → armani 로 이어지는 회심의 3단 콤보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결과물은 ↓

끝. The end. 시마이(終い). 끝판왕 메간 폭스의 자태 앞에서 모든 고민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이 친구의 사진을 베이스로 그래픽 작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주2). 이제 뱃살 사진만 찾으면 고민 해결 팍팍!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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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저작권이 분명한 상업용 이미지이기 때문에, 사전에 허락을 득한 브랜드/제품 홍보용 이미지 외에는 어떤 식으로든 지면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쇄, 출판물이 그렇겠지만 이미지 저작권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쓰다가 걸리면 속된 말로 박살납니다(...). 제가 '좋은 사진이 있는데 굳이 그래픽으로 그리는 수고'를 감내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고요. 대부분의 신문사들은 통신사(News agency)나 게티이미지 같은 이미지 콘텐트 제공업체와 계약을 맺고 해당 출처의 이미지를 활용합니다. 자사의 사진기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라든가 홍보자료를 통해 제공되는 이미지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요.

제 이미지는 메간 폭스의 헐벗은 사진을 수집하던 단순한 변태에서, 배불뚝이 사진을 모으는 하드코어 취향의 고등 변태로 진화(...)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해명하자면, 저 뱃살 페티시 아닙니다. 아무튼 fat, belly, pregnant, obesity 따위의 단어로 검색을 하고 몇 차례 OME(Oh! My Eyes)도 외치기도 하면서 제 비밀의 화원 임시 폴더를 채워 넣고 귀가했습니다. (책면은 지면 계획이 일찍 나오는 편이라 마감까지 하루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헐... 이미지 수집한다고 제목 고민을 하나도 안 했네요. 지하철에서 아이폰으로 메모메모.

여신의 라인에 담긴 시대상

육덕지거나 슬림하거나
지방, 시대와 문화를 말하다

육덕여신 혹은 슬림여신
지방의 역사가 인간의 역사다

지방에 담긴 인류학
지방 속에 담긴 인류학

당신의 여신은 어느 쪽?
지방덩어리는 곧 역사다

육덕과 슬림 사이
지방의 문화인류학

뚱보미인 날씬미인
지방의 문화인류학

질시 멸시
칭송 지탄
숭배 지탄
숭배 배격

지방
뚱보
뱃살

사실 육덕(肉德)은 '몸에 살이 많아 덕스러운 모양'이란 의미의 어휘건만, 최근에는 '허리 등은 날씬한데 특정 부위만 비상하게 발달한 섹시폭풍 글래머 여성'을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로 정착된 것 같습니다. 이번이 아니면 쓸 기회가 없겠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제목에 반영해보려고 했으나 (작금의 용례에 충실하자면) 본지 지면에 쓰기에는 무리수라고 판단해서 자체 검열했습니다. 다음엔 반드시 '육덕'을 쓰고야 말겠습니다. 이상한 다짐이야


시안을 만들자!
일반적으로는 여기까지 진전되면 바로 그래픽 팀에 작업을 부탁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직접 시안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경우처럼 그래픽 요소가 전체 레이아웃을 결정짓는 경우에는, 머릿속에서 구상한 것과 실제 결과물이 상이할 때가 많아서(보통 안 좋은 방향이죠) 조잡하게나마 시안을 만들어보는 편이 좋습니다.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착오와 자잘한 수정을 최소화할 수 있거든요. 그래픽 팀 선배께 안 쓰는 태블릿 하나를 강탈 임대해 슥슥.

시안을 만들어놓고 보니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채색이요. 그냥 살색으로 가자니 너무 노골적이고, 실루엣으로 가자니 이미지가 약해집니다. 그런 고민을 한 방에 날려버린 옆자리 선배의 조언 "로이 리히텐슈타인(주3)처럼 망점(halftone)으로 해보면 어때?" 유,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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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로이 릭턴스타인 Roy Lichtenstei (1923~1927) ; 미국의 대표적인 팝 아트 미술가. 앤디 워홀 등과 함께 팝 아트의 대표적인 화가로 신문 연재의 통속인 만화를 캔버스로 확대해 그린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대표작은 [Whaam!] (1963), [행복한 눈물] (1964, 아래 그림) 등이 있습니다.

완전히 다른 라인을 가진 두 여신의 토르소를 통해 '지방의 문화인류학'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표현해봤는데, 독자에게 잘 전달이 됐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닥치고 메간 폭스로 대동단결! 할걸 그랬나 싶기도 하네요. 그야말로 독자에게 활력을 편집자에겐 시말서를 주는 놀라운 편집!!(...)

덧) 날씬, 슬림, 슬렌더, 44사이즈 따위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종잇장 몸매'라는 적절한 표현을 알려준 친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땡큐베리감사!

관련링크
매일경제 6월 11일자 기사 - 팻
로이 릭턴스타인 위키백과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위키백과


덧글

  • JinAqua 2011/07/01 06:51 # 답글

    좋아요! 우와우
  • Charlie 2011/07/03 13:04 #

    메간 폭스 짤방의 위력이란…후후후 계획대로.
  • 00 2011/07/01 10:40 # 삭제 답글

    메간폭스는 인생을 막살아서 매력임
  • ㄹㄹ 2011/07/01 10:51 # 삭제

    지금 드류 배리모어 앞에서 가오 잡나요
  • Charlie 2011/07/03 13:06 #

    윗분 말씀처럼 드류 베리모어가 갑이죠. 그분 앞에서 메간 폭스는 모범생일 뿐. ㅋㅋ
  • dada 2011/07/01 11:17 # 답글

    그녀의 사진을 본 순간 글의 내용은 저의 머리속에서 사라지고 메간폭스로 대동단결!
  • Charlie 2011/07/03 13:07 #

    대동단결!! (어 근데 왜 눈에서 물이 나오지?)
  • 회색인간 2011/07/01 15:15 # 답글

    메간폭스는 성격 때문에 그 좋은 시리즈에서도 잘렸쬬.
  • Charlie 2011/07/03 13:08 #

    마이클 베이를 히틀러에 비유한게 타격이 컸죠. 제작자가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 유태인(스티븐 스필버그)이란 걸 몰랐단 말인가 ㅜㅠ
  • costzero 2011/07/02 00:04 # 답글

    으음... 나이들어 그런지 여자들 몸매 대동소이 한것 같던데요.일반인이라면 모르지만 관리하는 연애인들은 비슷비슷한 것 같던데요.이름답게 여우같은 날씬함을 가졌군요.
    트랜스포머2 볼때는 로봇 보느라 눈에 안들어 왔는데 헐.
    서구보다는 동양계가 역시.
  • Charlie 2011/07/03 13:09 #

    ㅎㅎ 그런가요. 사실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오토봇과 디셉티콘 보는 맛에 보는 영화죠 ㅋ
  • costzero 2011/07/03 16:49 #

    S라인은 몸매관리만 하면 자연적으로 나오는 거라.(가슴은 유전과 지방의 조화로)
    인간의 몸매보다는 로봇의 변신에 오! 라는 말이 나오죠.
    개인적으로 사운드 웨이브가 맘에 듭니다.
    애니에서도 카세트 3개가 튀어나와서 3대의 로봇이 되는데 영화에서도 아바타 몇대 데리구 다니는 것 같더군요.
    메가트론의 충신.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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