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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이야기(4) 유행어 제목, 득(得) 혹은 독(毒) by Charlie

그렇고 그런 사이
들어보셨나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신곡 [그렇고 그런 사이]요. 찰진 가사에 요로로로힛히 신나는 멜로디가 인상적이지만 노래방에서 부르면 백발백중 망하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 곡이죠. 7월 2일 토요일자 출판면 사이드 꼭지 제목은 바로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노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최근 즐겨 듣고 있는 곡이기도 하고, '너랑 나랑은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라는 가사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꼭 한번 제목에 반영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옳다구나! 싶어서 냉큼 써봤어요. 이미지는 1968년 개봉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빌려 왔습니다.

[클릭] (2011, 리더스북)이라는 이 책은 '신속하게 끌리고 오래 지속되는 관계의 비밀'이라는 부제처럼, 인간관계에 있어 첫눈에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는 '특별한 순간'이 있으며 그런 순간은 연애는 물론이거니와 업무에 있어서도 긍정적이고 장기적인 효과를 낸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한눈에 반한다'라는 고전적인, 그리고 상투적인 표현을 소재로 삼아 한번쯤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을 쓰는 것도 참 재능이다 싶어요. 흔히 '딸깍하는 소리를 내다' 혹은 '마우스를 클릭하다'라는 의미로 쓰는 클릭(click)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click 즉각 좋아하게 되다; 인기를 얻다
We met at a party and clicked immediately.
우리는 한 파티에서 만났는데 즉시 마음이 통했다.
He's never really clicked with his students.
그는 사실 학생들에게 한 번도 인기가 있어 본 적이 없다.

↑ 이런 뜻도 있었네요. 예문 두 개가 엄청 상반된 분위기라 왠지 슬픕니다. 두 번째 친구,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유행어 제목 득(得)일까 독(毒)일까
유행어를 이용한 제목은 편집기자에게 있어 거부하기 힘든 유혹입니다. 무엇보다 유행어는 독자의 눈길을 잡아 끌 수 있는 확실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이거든요. 배우 황정민 씨의 말마따나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느낌이랄까요. 비슷한 맥락으로 유행어가 독자에게 익숙한 말이라는 것도 제목으로서의 장점이 됩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신문 기사의 제목은 머릿속에서 독음(讀音)하는 과정을 통해 이해하는 구어(口語)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글이 아닌 말에 가까울수록 맛깔스러운 결과물이 나옵니다. 전 제가 만든 제목을 몇 번씩 되뇌어보곤 하는데, 제목이 자연스럽게 읽히는 말(口語)인지 혹은 단순한 문장(文語)에 불과한지 소리 내어 읽어볼 때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자연스럽게 읽히는 제목을 두고 '입에 붙는다'고 말하는데,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장 신선한 유행어는 인기 드라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드라마는 유행어를 남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지금 생각나는 유행어를 꼽아보자면, 우선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유행어 '띵동/띵똥'이 있겠네요. 같은 드라마에서 나온 '극뽁'이라든가 '충전~' 같은 표현도 빼놓을 수 업겠죠. 전국에 주원앓이를 전파하고 시가폐인을 양성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도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라든가 '한땀 한땀',  '이 어메이징한 ~' 등등의 유행어를 남겼습니다. 드라마 이외에도 [개그콘서트]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나 TV CF, 영화나 노래 제목에 이르기까지... 유행어의 소스는 무궁무진합니다. 심지어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쓰이던 은어가 대중적인 유행어로 자리매김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듯 사방에 넘쳐나는 유행어를 제목에 활용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뉴스 검색을 해보면 위에서 언급한 유행어들이 신문 지면에서 무척 애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행어를 활용한 제목에는 장점 이상의 단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억지로 갖다 쓴 유행어는 지면과 기사의 격(格)을 깎아 내릴 수 있다. 둘째, 타이밍을 놓치면 안 쓰는 것만 못하다. 셋째, 대다수의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즉 ① 중용의 묘 ② 시의적절 ③ 공감대 형성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유행어 제목은 득(得)이 아닌 독(毒)이 됩니다.


제1의 공식 : 중용의 묘
잘못 쓰인 유행어는 지면과 기사의 격(格)을 깎아 내립니다. 애초에 유행어가 어울리지 않는 지면이 있습니다. 그런 지면에서 발견한 유행어 제목은, 정장 차림이 어울리는 자리에 혼자 알로하 셔츠를 입고 온 사람마냥 뻘쭘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알로하 셔츠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드레스 코드에 맞추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얘기죠. 또 유행어로 도배된 제목도 아쉽습니다. 주로 인터넷의 연예 뉴스의 자극적인 제목들 중에 이런 사례가 적지 않은데, 네티즌들의 클릭을 유도해 언론사 웹사이트의 페이지뷰(주1)를 올리는 막대한 사명을 띄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포인트로 쓰인 코르사주(꽃장식, corsage)처럼, 유행어도 적재적소에 딱 한번 써줘야 빛이 납니다. '미친 존재감 하의실종 종결자', '한땀 한땀 어메이징한 드레스, 이게 최선입니까?' ← 이래서는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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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페이지뷰 Page view ; 이용자가 특정 웹사이트 내의 웹 페이지를 접속/열람한 횟수. 방문자수와 히트수가 웹사이트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일반적인 척도라면, 페이지뷰는 광고 단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제2의 공식 : 시의적절
지금 '따봉' 쓰면 망해요(...). 오랜 시간 숙성된 좋은 문장은 경구(aphorism)나 격언(maxim)이 되지만(주2), 유행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유행어를 유행어로 만드는 건 '그때 그 시절'이 아닌 '지금 이순간'입니다. 유행어를 시쳇말(時體-말)이라고 하는 이유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최신의 유행어라도 그걸 활용하는 타이밍을 놓치면 효과가 반감됩니다. 유행어를 쓸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에는 이 지면에 이 기사에 써도 될까? 너무 오버하는 건 아닐까? 따위의 고민과 누가 나보다 먼저 쓰면 어떡하지? 뒷북이 아닐까? 라는 걱정이 교차합니다. 섣부른 모험과 진부한 반복 사이의 임계점이랄까요, 마지막까지 쥐고 있다가 최적의 타이밍에 쓰는 유행어는 역전 만루홈런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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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경구와 격언 ; 경구(警句)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말을 의미합니다. 비슷한 단어로는 캐치프레이즈, 잠언 등이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경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나 '현재를 즐겨라'라는 뜻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유명하죠.
격언(格言)은 오랜 역사적 생활 체험을 통하여 이루어진 인생에 대한 교훈이나 경계 따위를 간결하게 표현한 짧은 글로 명언이나 속담이 유사한 의미라고 하네요.


제3의 공식 : 공감대 형성
이번 제목이 놓친 것이 이 부분입니다. 아무리 통통 튀는 유행어 제목이라고 해도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실패하면 무용지물입니다. 이번엔 제 개인적인 관심사에 매몰돼 보편적인 공감대를 간과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목을 달면서 조판을 도와주시는 오퍼레이터 몇 분에게 한번 여쭤봤습니다. "혹시 이 제목 보시면 생각나시는 게 없나요?" 돌아온 대답은 "잘 모르겠는데요"뿐. (통계적으로 유행어에 민감한) 20대 여성분들도 몰라본다면 이미 유행어가 아니지만(장기하 지못미 ㅠ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마음에 그냥 써버렸습니다(넵, 똥 고집). 이 단계에서 공감대를 포기한 것 같아 반성 중이에요.

얘기가 나온 김에 신문을 편집할 때 주된 독자층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알아보겠습니다. [월간 신문과 방송]에 실린 안민호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교수의 '2010년 한국신문협회 독자 프로파일 조사 연구'에 따르면, 열독률(주3)이 상대적으로 높은 독자의 프로파일은 30, 40대 / 대학교 재학 이상 학력 / 월 소득 401만~500만원 가구 / 전문직, 경영직, 자영업자, 학생이라고 합니다. 이 자료만 보면 아무리 관대하게 봐줘도 장기하 코드는 안 먹히겠어요(...). 물론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 콘텐츠가 전파, 확산되기 때문에 열독률 통계만으로 접근하는 방식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오히려 SNS 등을 통해 뉴스가 확대/재생산되는 과정을 주도하는 20, 30대 네티즌들이 새로운, 그리고 강력한 뉴스 소비자로 보는 편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 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널리즘 관련 수업에서는 평균적인 독자의 수준을 중고교생으로 상정하고 기사를 쓰라고 말합니다. 수십 년도 더 된 교과서의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다수의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과 어휘로 쓰라는 의미는 언제나 유효합니다. '쉽게 써라'는 정언명령은 제목에서도 통용되는 원칙이고요. 다만, 앞서 말한 '독자의 수준'은 지적 수준이나 관심사를 중고교생의 그것으로 상정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정리하자면, 중학생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체를 지향하되 기사와 제목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팩트와 메시지는 주된 독자층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자 - 는 그렇고 그런 얘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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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열독률(熱讀率) ; 구독 여부와 관계없이 최근 일정 기간 동안 신문을 읽은 사람을 대상으로 '어느 신문을 읽었는지' 조사한 것. 전체 가구수에서 특정 신문을 구독하는 비율은 구독률, 신문을 보는 가구 중에서의 비율을 구독점유율이라고 합니다.


그렇고 그런 제목
유행어를 제목에 활용하는 목적은 뉴스를 쉽고 빠르게 전달하는 데에 있습니다. 유행어에 경도되어 '전달과 이해'라는 본연의 목적이 퇴색된 채 세상에 나온 제목은 주객이 전도된 '그렇고 그런 제목'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첫눈에 "우왕ㅋ굳ㅋ"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어떻게 놀라도 그런 감탄사는 안 나와...) 독자와 '클릭한' 제목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오늘도 저의 유행어 답사기는 계속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괜춘은™ 유행어 좀 제보해주세요. ㅋㅋ 결론은 제목 앵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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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검은고양이 2012/04/03 09:57 # 삭제 답글

    왜이렇게 기나요 걍 단축 시켜주시면 않되나요?
  • 검은고양이 2012/04/03 09:58 # 삭제 답글

    넘 길어서 숙제에 도움이... {이말듣고 속상했으면 죄송해요}
  • Charlie 2012/04/24 20:10 #

    숙제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스스로 공부할 자신이 없다면 있는 내용을 축약해보시는 것도 훌륭한 공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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