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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T의죽음

다이어트


* 문체상 경어는 생략합니다.
** 밸리를 달구고 있는 다이어트 관련 포스트를 보면서 예전에 써둔 글이 생각나 올려봅니다. 넵 재활용(...).


그날은 T의 장례식이 있던 날이었다. 생전의 T는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넘치는 개성으로 어디서든 주목받는 인물이었으며, 먹는 즐거움을 알았던 아마추어 미식가였다. 그를 알던 많은 이들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검은 정장을 입고 자리에 앉은 이들은 흐느끼거나, 코끝이 빨개지도록 코를 풀거나, 지루해하는 아이를 타이르기도 하며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다. T와 절친했던 이도, 비즈니스 상 알고 지내던 이도, 별반 왕래하지도 않았던 이웃까지도 모두 T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보냈다. 그리고 선하기만 했던 그의 비참한 죽음에 분노했다. T는, 살해당했다.

T, 트렌드(Trend)는 44사이즈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다. 트루릴리전의 스키니 진, 손바닥만 한 핫팬츠, 모델들조차 입으려면 애를 써야할 것 같은 티셔츠 모두가 44사이즈와 한 통속이었다. 헐렁함은 멸시 당했고, 넉넉함은 조롱받았다. 다양함에서 오는 패션의 매력은 새로운 미의 기준이 된 44사이즈에 의해 몰살당했다. 44사이즈를 따르지 않는 유행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T, 트레이드마크(Trademark) 역시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전지현의 허리가 T를 독살했다. 개개인의 개성은, 잠시잠깐 '미의 기준'으로 부상한 연예인들의 각종 신체 부위에게 무참히 유린당했다. 모두가 염원하는 이상적인 실루엣을 갖기 위해, 개성은 무자비하고 체계적으로 살해당해야만 했다. 이상적인 신체 부위들이 조합된 이 '모자이크 살인마'를 도운 혐의로 기소된 매스미디어는 언제나 그랬듯이 풀려날 것이다. 그는 결코 지는 법이 없었다.

T, 테이스트(Taste). 그에게 영원한 안식이 함께 하길. 그는 거식증이 쏜 흉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범인은 체포됐지만 정신 병력을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았고, 지금 그녀는 '살인자 모델'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먹을 것과 먹는 행위에 대한 즐거움, 음식이 주는 행복의 가치는 뼈에 붙어있는 살가죽이 주는 얄팍하고 을씨년스러운 매력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T의 주검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바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의 모습을 그리며 눈물 흘린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날 두렵게 만드는 것은, 나의 죽음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불안한 예감이다. 흉포한 44사이즈가, 전지현의 사악한 허리가, 광기에 허기진 거식증이 어느새 등 뒤로 다가와 있음을 느낀다. 비릿하고 서늘한 죽음이 내게도 왔다. 나의 죽음으로 인해 T의 장례식은 비로소 완성되리라. 내 이름은 투모로우(Tomorrow). 나는 공허한 말 대신 나 자신의 완전한 죽음으로 선언한다.

T는 죽었다(Die, T).


*** 본문 중 '44사이즈'와 '거식증'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시선이 개입됐음을 밝히며, 더불어 이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는 분들이계시다면 미리 사과드리겠습니다. 마른 사람들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거식증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의 고통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저 졸렬한 글을 그나마 좀 매끄럽게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헐- 쓰고 보니 제 의견이 없네요(...).

[다이어트 떡밥]에 대해서, 제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빼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하지만 다이어트의 필요성이 진짜 자기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대중문화가 만들어 내고 강요하는 '(공중파용) 미의 기준'에서 오는 것인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by Charlie | 2009/04/07 21:21 | 만물잡화고물상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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